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변기로 1000억 번 변기왕
박현순은 욕실의 혁신을 꿈꾸며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5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의 결심을 굳혔다.
1986년 7월, 500만 원의 자본으로 3평짜리 사무실에서 동원무역을 설립했다. 사무실은 신정동 부모님 집 옆 신문보급소의 작은 골방이었다.
이때 그의 창업 동기는 명확했다. 아파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자 냄새나고 불쾌했던 공간을 쾌적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박현순은 유럽 각국을 다니며 욕실 문화를 연구했다. 디자인은 이탈리아, 품질은 독일, 가격은 태국에서 참고하며 자신만의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선진국의 욕실 시스템을 배웠고 한국형 욕실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 그는 매일 을지로, 강남, 여의도 등을 오가며 타일 가게와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영업은 쉽지 않았지만 박현순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끈기와 열정으로 두 컨테이너 계약을 따냈다.
회사에 입사하던 8개월 만에 첫 급여를 받았고, 그 후에는 급여의 5배가 넘는 상여금을 매달 수령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사업에 필요한 인내를 심어주었다.
동원무역은 점차 성장했다. 제품군은 타일, 위생도기, 욕실가구, 각종 액세서리로 확장해 나갔다.
욕실이라는 공간을 단순한 생리적 공간이 아닌 감성적이고 보여주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박현순의 목표였다. 그는 1991년 상호를 동원세라믹(주)로 변경한 뒤 브랜드 인터바스를 런칭했다.
1980년대 후반 국내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다. 욕실 수요가 폭증하며 사업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회 사용 시 13리터나 물이 들어가는 기존 변기에 주목한 박현순은 물 사용량을 반으로 줄인 6리터 절수형 변기를 개발했다. 이는 국내 최초로 특허를 받은 제품이었다.
박현순은 특허기술을 경쟁사들과 공유해 국내 수자원 절약에 큰 기여를 했다. 그 결과 그는 환경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인터바스는 단기간에 100억, 그리고 1000억 원을 넘기는 성장을 이루었다. 7년 만에 단독 사옥을 마련했고, 2015년에는 전국에 20,000평 규모의 공장과 물류센터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단순한 흰색 위생기구를 넘어 다양한 컬러와 패턴을 욕실 제품에 적용했다. 고급스러운 세면대, 욕조, 양변기를 개발하고 국내외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14개국에 수출을 시작했다. 상하이, 두바이, 대만, 중동 등 세계 주요 도시에 180여 개의 대리점을 계약했다.
중국 상하이 욕실박람회에 화려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이며 현지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세 배 높은 가격에도 상류층 시장을 사로잡았다.
중국주거문화발전에 기여한 100대 기업상, 유명 브랜드상, 친환경제품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이런 혁신을 통해 박현순은 IMF와 2008년 금융위기에도 굳건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욕실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공간,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혁신을 추구했다.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을 탄생시켰다.
2003년 상하이에 인터바스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까지 건설했다. 지역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상하이 한국학교에 위생 설비를 기증하고, 상하이 한인회 자문위원으로도 봉사했다.
그는 중국청소년사랑선도위원회를 발족하여 청소년 선도 활동에 앞장섰다. 바른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정립하도록 캠페인, 직통상담, 경시대회, 체육활동, 문화행사 등을 꾸준히 개최했다.
월드옥타 상하이지회 부회장으로서 차세대 무역스쿨과 장학금 수혜자, 사생대회, 중국어 말하기 대회, 국제 교류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한국과 중국 청소년 공동체 ‘하오펑요’를 창단해 양국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박현순의 경영은 단순한 욕실 제품의 판매를 넘어선다. 그는 기업가 정신과 봉사,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욕실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박현순의 철학은 여전히 살아있다. 스마트 욕실, 친환경 욕실, 아름다운 디자인의 욕실을 통해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변기의 생산과 세면기, 욕실가구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환경적 공헌과 디자인 혁신, 글로벌 성장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해냈다.
박현순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 끈기, 창의성, 신뢰를 중시하는 경영 방침을 펼쳤다. 고객의 신뢰와 시장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인터바스는 대한민국 욕실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변기왕 박현순의 혁신은 단순한 부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산되었다.
그가 만든 ‘변기 왕국’은 박물관과 전시장, 체험 공간 등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황금 변기, 축구공 변기, 1000개 변기로 만든 탑 등 개성 넘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박현순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욕실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이끌어 왔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독창적 디자인 개발에 주력했다.
그는 욕실 제품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신소재와 스마트 기술을 도입했다. 견고한 품질과 화려한 디자인이 어우러져 제품의 경쟁력을 높였다.
IMF와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이 위기를 겪었지만 인터바스는 주문이 몰려들어 매출을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이는 지속적인 기술 투자와 디자인 혁신의 결과였다.
박현순은 욕실 업계를 넘어 사회공헌과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청소년 선도와 인재 양성에 힘썼다.
지금도 그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욕실 개발에 전념한다. 친환경 욕실, 스마트 욕실, 미적 감성이 조화된 욕실을 디자인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박현순의 사업 철학은 “보여주고 싶은 욕실, 머물고 싶은 욕실”이다. 그 철학은 오늘날 인터바스 브랜드의 핵심이 되었다.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거듭하며, 그는 새로운 욕실 문화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인터바스를 국내외 욕실 명가로 성장시켰다.
박현순의 성공신화는 단순한 부의 축적을 넘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변기왕, 욕실 혁신가, 사회공헌가로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것이다.
- http://www.interbath.co.kr/main/html.php?htmid=page%2Fcompany%2Fsub2.html
- http://www.weeklypeople.net/view.do?seq=12173
- https://changpogo.kr/91/?bmode=view&idx=11134200
- http://www.interbath.co.kr/us/main/html.php?htmid=page%2Fcompany%2Fsub2.html
- https://www.powerkoream.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