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N 위대한 일터 부안 52년 순댓국집 순대국 순댓국 맛집 식당 (장작불로 끓인 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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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로 끓인 깊은 진국, 부안의 52년 순댓국집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불빛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전라북도 부안 읍내, 이른 새벽의 찬 공기를 뚫고 연기가 하늘로 길게 뻗어 오른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 골목 끝 허름한 기와집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아궁이 순댓국집’이라 불리는 이곳은 52년째 같은 터에서 불을 지핀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란 무쇠 솥, 그리고 밤새도록 끓고 있는 하얀 사골 국물이다.
“우리 일은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나요. 연기가 나야 하루가 살아 있는 거죠.”
이 집의 주인 채영석(50) 씨는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나와 능숙하게 아궁이에 밀어 넣는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내뿜는 특유의 타닥거림, 그 불 위에서 돼지 뼈가 천천히 끓어오른다. 사골이 우러나는 데만 꼬박 14시간. 전날 오후부터 불을 지피기 시작해 새벽까지 계속 불을 본다고 한다. 기계식 가스불보다 수고는 들지만, 장작불만이 내는 진한 깊이와 고소한 향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수제 순대
이 집의 또 다른 자랑은 ‘직접 만든 순대’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장식 순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 채영석 씨는 매일 새벽, 막창을 소금으로 서너 번 빡빡 문질러 씻는다. 거기에 당면 대신 직접 다진 채소와 볶은 견과류, 풋마늘, 들깨, 들기름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선한 선지를 섞어 넣어,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피순대’를 완성한다.
“이게 쉽지 않아요. 간이 조금만 틀어져도 맛이 확 달라집니다. 손맛이 그대로 국물 맛에 스며들거든요.”
그는 순대를 찔 때도 반드시 장작불을 사용한다. 일정한 온도보다 불의 결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그래서 불이 약하면 국물이 텁텁해지고, 너무 세면 속이 터진다. 하루에 만들어 나가는 순대는 약 20kg 정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면 거의 다 동난다.
단골들이 찾는 진짜 순내장국밥
순댓국도 인기지만, 단골 손님들이 가장 찾는 메뉴는 ‘내장국밥’이다. 돼지의 특수 부위, 이른바 ‘암뽕’(암퇘지 생식샘 부위)을 직접 손질해 넣는다. 이 부위는 잡내가 심하기로 유명하지만, 채 씨는 그걸 특유의 세심한 손질로 해결한다. 먼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은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불순물을 제거한다. 그다음 하루 동안 숙성시켜 냄새를 잡고, 주문이 들어오면 끓는 사골 국물에 넣어 한 번 더 데운다. 이렇게 하면 내장이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풍미를 낸다.
국물 한 숟가락을 떠 입안에 넣으면 느껴지는 묵직한 깊이, 기름기 없이 깔끔한 뒷맛. 오래된 시간의 농축된 맛이 혀끝에 머문다. 손님들 대부분은 국밥을 한 숟갈 뜨기도 전에 새우젓 한 숟가락을 곁들이며 “이게 진짜 내장국밥이지”라며 감탄한다.
두 세대가 지켜온 ‘고집’의 맛
이 집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채규열(80) 씨는 젊은 시절 군 복무를 마치고 부안에 내려와 아궁이 한 칸, 솥 하나로 국밥집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순댓국은 서민들의 별미이자 노동자들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한 끼였다. 채규열 씨는 가게를 지키며 “국물엔 성실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늘 입버릇처럼 했다.
아들 영석 씨는 젊은 날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며 5억 원의 빚이 남았다. 삶이 무너진 순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아버지였다.
“나랑 같이 하자. 불 길 앞에서는 누구나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 말 한마디에 아들은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장작을 패고, 순대를 만들며, 국물을 지켜내는 일상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새 그 속에 위로와 희망이 있었다.
8년 전 아버지 밑에서 시작한 그는, 3년 전 가게를 완전히 물려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메뉴 하나, 조리 하나에도 아버지의 방식 그대로다. “주인이 바뀌면 맛도 바뀐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영석 씨는 매일 새벽 4시, 가게 불을 밝히며 아버지의 구수한 말투를 떠올린다. “국밥은 손님 속을 덥히는 거야. 먹고 나서 따뜻해진다면 그게 진짜지.”
세월이 맛으로 남다
부안 시장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른다는 이 순댓국집은 이제 부안의 명소가 되었다. 평일 오전에도 문전성시다. 어떤 손님은 30년째 단골이라 한다. “우리 애도 어릴 때 여기 순댓국 먹었어요. 지금은 손자 데리고 오죠.”
가게 벽 한쪽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 채규열 씨, 낡은 나무 간판,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시장의 풍경. 그것들은 세월의 무게를 말없이 대신 증명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장작불은 낯설고 비효율적인 방식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자에게 장작불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라 ‘삶의 온도’다. 불을 지피며 서로를 이해하고, 국을 끓이며 묵묵히 시간을 이겨낸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작불 앞에서 국물이 한 번 더 끓어오를 때마다 영석 씨는 말한다.
“이 맛을 지키는 게 우리 집의 사명입니다. 손님들이 ‘예전 그대로네’라고 말하면 그게 제일 큰 보람이에요.”
오늘도 아궁이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국물이 끓는 소리, 장작 타는 냄새, 그리고 국밥 한 그릇에 담긴 반세기의 시간. 부안의 이 순댓국집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다. 땀과 불, 그리고 세월이 만든 ‘진국(眞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