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5

오늘N 식큐멘터리 포천 이동갈비 맛집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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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食)큐멘터리] 군인들을 위로하던 맛, 포천 이동갈비 이야기

경기도 북부의 작은 도시, 포천. 북쪽으로는 철원과 맞닿고 남쪽으로는 수도권과 연결된 이곳은 ‘양주 이남’, ‘철원 이북’의 경계에 서 있는 도시다. 예로부터 군부대가 많아 ‘군인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이런 포천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음식이 있다. 바로 ‘이동갈비’다.

이동면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이 음식은 단순히 한 지역의 명물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과 사람들의 정서, 그리고 한 시절을 버텨온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말 그대로 ‘생활의 맛’이다.


군인들을 위한 한 그릇의 위로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포천은 온통 폐허였다. 그러나 그 황량한 땅에도 사람은 살았고, 사람은 결국 먹어야 했다. 당시 이동면에는 미군 부대와 국군 부대가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외진 지역이었지만 군인들 덕분에 하루하루 식당들이 성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때 이동갈비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이동갈비’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갈비뼈에 살점이 얼마 남지 않은 자투리 고기를 모아 이쑤시개로 엮어 팔던 것이 그 시초였다. 지금처럼 곱게 손질된 고급 갈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찌꺼기 고기’였다. 당시 군인들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식당 주인들은 값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궁리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이동갈비의 원형이다.

값은 싸지만, 주인들은 고기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양념’이었다. 설탕, 간장, 마늘, 양파, 배즙 등 구하기 쉬운 재료를 넣어 감칠맛을 살리고,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 간장 양념이 이동갈비의 핵심이었다.

군인들은 그 짭조름하고 달큰한 맛에 반했다. 부대 근무를 마친 군인들이 휴가를 나올 때면,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이동갈비 먹고 가라”는 호객 소리가 퍼졌다고 한다. 그들은 갈비 한 접시를 앞에 두고, 고향의 어머니 밥상과 가족의 손맛을 떠올렸을 것이다.


‘46년 전통’의 맛, 숙성에서 피어나다

오늘날의 이동갈비는 더 이상 자투리 고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같다. 값보다 정직한 맛, 그리고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함 말이다.

이동면의 여러 갈비집 중 한 곳, 46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갈비집’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은은한 고기 냄새가 허기를 자극한다. 주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숯불 위에서 윤기 도는 갈비가 익어간다.

“우리 갈비는 이틀간 숙성시키는 게 비결이에요.”
주인장은 손수 포를 뜬 갈비를 보여준다. 지방과 살의 결이 일정한, 윤기 나는 갈비다. 그는 고기를 정성껏 포 뜬 후, 냉장실에서 48시간 숙성시킨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고기 속의 조직이 자연스럽게 연화되어, 구웠을 때 한층 부드럽게 씹힌다.

그다음은 양념이다. 양념장 또한 하루 이틀 만에 완성되지 않는다. 간장, 마늘, 배즙, 양파, 사과, 올리고당, 참기름, 그리고 주인만의 비밀 재료가 들어간다. 이 양념을 역시 이틀간 숙성시켜야 감칠맛이 깊어진다고.

이후 숙성된 고기와 숙성된 양념이 만나 다시 2~3일간 재워진다. 총 5~6일간 이어지는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이동갈비가 완성된다. 고기와 양념이 완벽히 어우러져야 ‘이동갈비다운 맛’이 나기 때문이다.

짧게 재운 고기는 간이 치우치기 쉽다. 하지만 숙성의 시간을 견딘 갈비는, 구울 때마다 향이 피어나며, 단맛과 짠맛이 조화를 이룬다. 입에 물면 육즙이 흘러나오고, 양념은 짙지만 질리지 않는다. 한 점을 먹은 뒤에도 고소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달라진 시대, 여전한 맛의 힘

세월이 흘러 포천은 많이 달라졌다. 도심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들어섰고, 젊은이들은 서울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동면만큼은 여전히 ‘갈비의 고장’으로 불린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들고, 포천IC를 지나 이동면 입구에 들어서면 “이동갈비”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걸린 간판들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현지인들은 말한다. “이동갈비는 포천의 얼굴이야.”
그저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체성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요즘은 생갈비나 숯불구이, 심지어는 ‘이동갈비 도시락’까지 등장하며 메뉴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간장 양념의 맛을 찾는다. “고기를 구워서 밥 한 입, 김치 한 젓가락.” 그 단순한 조합이야말로 한국인의 입맛이 기억하는 행복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을 지탱하는 ‘한 끼의 힘’

이동갈비의 역사는 단지 음식의 발전사가 아니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의 마음을 위로했던 한국의 근현대사 속 한 단면이다.

군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그 한 접시의 갈비는, 지금은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향수가 되었다. 부모 세대는 “내가 그 시절 휴가 나왔을 때 먹었던 그 맛이야”라고 회상하고, 젊은 세대는 “SNS에서 본 포천 맛집이 여기야?” 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숯불 위 갈비를 집는다. 세대가 달라도, 그 향과 맛이 연결 고리가 되어 잊혀진 정(情)을 이어준다.

포천의 이동갈비는 그렇게 7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살아남았다. 민초들의 지혜와 정성이 만든 음식문화의 결과물이며, 숙성과 기다림을 통해 완성된 ‘한국의 맛’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

이동갈비 한 점에는 포천 사람들의 삶이 깃들어 있다. 전쟁 직후의 허기, 군인들의 그리움, 지역 상인들의 성실한 땀과 시간이 수십 년을 이어 지금 여기에 녹아 있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소리를 듣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1950년대 이동면의 한 식당으로 되돌아간다. 양념의 향이 피어오르고, 군인들이 소박하게 웃으며 “이 맛이 그립다”며 젓가락을 들던 그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포천 이동갈비.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한 시대를 위로한 따뜻한 기록이며, 여전히 한국인의 입맛 속에 살아 있는 ‘정의 맛’이다.